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문단 편집) === [[일본의 피해자 행세|평화기념관 전시 내용의 편향성 문제]] === 기본적으로 원폭투하와 그에 따른 피해를 알리기 위해서 세워진 곳이며, 과거 일본군의 [[전쟁 범죄]]에 대한 내용은 없다. 원폭을 투하한 국가인 미국과의 전쟁이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즉, [[진주만 공습]]부터 원폭투하까지의 진행과정을 설명한 전시물이 있을 뿐이다.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너희들이 전쟁을 일으켰으니 원폭 투하를 슬퍼할 자격이 없다.'까지는 아니지만, [[일본의 피해자 행세|피해자 행세]]로 보기도 한다. 따라서 전시물의 대다수가 원폭의 가공할 위력과 그 피해를 강조하는 데 치중되어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일본인의 시각에서 보면, 과거 일본이 전쟁을 일으켰으며, 전쟁 범죄가 나빴다고 생각하는 일본인들조차도 원폭이 떨어진 곳에 원폭의 참상을 알리고 이를 슬퍼하는 내용이 주된 전시물인 것에 별다른 이의를 갖지 않는다. 이는 스스로를 '전쟁의 가해자인 동시에 원폭의 피해자'라고 인식하는 것을 반영하며, 특히 [[일본의 우경화|우경화]]가 진행된 [[2010년대]] 중반 이후로는 일본의 전쟁 범죄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것을 '''전후 자학사관과 반일세력의 일방적이고 부당한 덮어씌우기'''라는 인식마저 확대되고 있다. || [[파일:attachment/히로시마 평화기념관/자료586.jpg|width=100%]] || [[파일:attachment/히로시마 평화기념관/자료615.jpg|width=100%]] || 히로시마 평화기념관 앞에 가면 핵폭탄이 떨어진지 며칠이 되었고, 핵실험이 언제 가장 마지막에 일어났으며, 마지막으로 그 위치와 장소, 시간을 알려주는 종이와 시계를 둔다. 사진의 표지판은 [[북한의 3차 핵실험]]을 표시한 것. 한편 [[히로시마시]] 시장의 주 업무중 하나가 핵실험을 하는 나라의 정부에 '항의서한'을 보내는 것으로 진영불문 핵실험이 시행될 때마다 보냈다. ([[https://v.daum.net/v/19970703183800140|日원폭 피해도시 등 반핵단체, 미국 핵실험 강력 항의 1997 연합뉴스]]) 사진의 철제판이 이제까지 보낸 항의서한을 새겨둔 것이다. [[일본]]의 민간인 입장에서는 어느날 갑자기 [[핵폭탄]]을 맞았으니 피해자라고 주장할 여지도 있을 수 있지만, 원자폭탄이 투하된 것은 '''일본의 [[진주만 공습|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으로 시작된]] 전쟁'''에서 비롯된 것이다. 2005년에 히로시마 원폭에 살아남은 생존자 대표와 당시 버섯구름을 찍은 해롤드 애그뉴 박사와의 면담이 있었는데 생존자 대표들은 민간인 집단에게 핵을 떨군 것으로 인해 많은 이웃들이 죽었으며 이에 대한 사과를 요구하지만 해롤드는 이를 거부하는 모습과 '''"나도 니들이 벌인 진주만을 통해 많은 친구를 잃었다. 만약 사과를 요구한다면 당신나라 군대 일본제국군에게 사과를 요구하라"'''라고 했다. 이들은 인류에게 사용하지 말아야 할 원폭에 관련된 애그뉴씨가 직접 사과해야 먼저 사망한 이들이 편히 잠들지 못 한다며 피해자 코스프레를 하자 애그뉴는 오히려 당신이 우리들한테 사과해야 한다며 거부의사를 표하며 당신네들 정부가 또 전쟁을 하려는 일이 없기를 바란다며 반박했다.[[https://www.youtube.com/watch?v=ufZym-LkkBw|영상.]] 이 전쟁 기간 동안, 연합군에 의한 일본인 민간인 피해 외에도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들 피해도 존재한다는 것 역시 중요한 지점이다. 진주만 공습 당시 피해를 입은 미국의 민간인들 외에도 중국인, 필리핀인 등 아시아인들을 포함해서 계산할 경우 히로시마나 나가사키의 민간인 피해자를 모두 합치더라도 일본군에 의한 민간인 피해는 압도적으로 많다. 조선인 희생자는 대략 히로시마에서 3~4만명 가량으로 추정되는데, 정확한 통계는 없다. [[한국인]] 위령비 아래에 묻혀 있는 희생자 명단은 약 2,500명 가량인데, 이는 물론 신원이 명확하게 밝혀진 희생자의 명단만 넣은 것. 추정 희생자 수에 따르면 이는 히로시마 원폭 전체 희생자의 약 10%에 해당한다. 참고로 히로시마와 나가사키를 합치면 약 6만에서 최대 7만까지 조선인 원폭 희생자가 있다고 추정된다. 물론 이러한 통계가 모두 맞다고 할 수는 없는것이 히로시마 원폭으로 희생된 사람을 공식적으로 집계한 것이 14만명이라는 것을 가정했을 때, 이는 비약이라는 관점도 있다. 아울러 조선인뿐만 아니라 히로시마에 수감되어 있던 연합군 포로 중에서도 희생자가 나왔다. 위의 비판을 히로시마에서도 인지하여 결국 2019년 대대적인 기념관 리뉴얼 과정에서 어느 정도 수정이 이루어졌다. 이 리뉴얼은 당초 동관부터 시작하던 것을 본관부터 시작하는 동선의 수정을 위시로 하여 그동안 초입에 나오던 인형들을 당사자들의 비판을 존중하여 제거하고 피폭자들의 유품 혹은 피폭자가 당시를 회고하면서 그린 그림 등을 중심으로 한 구성을 강화하여 점차 줄어드는 피폭자들의 증언을 최대한으로 보완하고 시간이 갈수록 관람객들이 이들의 증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는 것을 감안하여 이루어진 조치였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미흡했었던 외국인 피폭자 관련 전시물이 추가되었는데, 2019년 8월 6일 NHK 스페셜 방송에서는 미군 포로의 인식표 및 조선 출신자로 피폭 당시 군인이었던 사람의 사진과 군인수첩이 전시되어 있다. 해당 수첩의 주인공인 곽 모씨의 경우에는 촬영일 기준으로 대한민국에서 생존해 계셨기에 자신의 물건이 전시되었다는 소리를 듣고 해당 박물관에 찾아가서 자신의 물건을 보면서 원폭 피해자가 일본인뿐이 아니라는 걸 알려준 것에 대하여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왔다. 그리고 전시관 도입부의 설명 문구에 강제징용이 있었음을 언급하는 내용과 국가의 잘못된 정책으로 인하여 원폭을 맞았다는 내용이 간략하게나마 언급되어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